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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도 포함하고 있는 이 운동은 … 맑스주의와 허무주의를 초극하는 새로운 정신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켜야 될 줄 안다. 외람되지만 각하의 치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 자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만일 전민족신자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살자’ 전두환을 축복한 목사들 “어려운 시기에





사전 집회 성격의 행사였다. ‘구국 기도’와 ‘교회대각성’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위기에 처한 박근혜를 특면 지원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리고,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수세력이 권력을 잃어버리자 문재인 정부를 공산주의 또는 악의 세력이라 주장하며 ‘구국기도회’를 빙자한 극우집회를 열고 있다. 박정희식 근대화의 논리를 철저하게 내면화하고, 체질화했던 게 개신교였다 개신교 성장의 비밀엔 이런 정치적 요소뿐 아니라 또 다른 영향도 있다. 바로 ‘번영신학(繁榮神學)’이다. ‘번영신학’은 금전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신의 뜻이라고 믿으며 신앙이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믿는 신앙이다.



이쪽에 불리한 걸 보니 계획 중에 있었던 것 같고, 그럼에도 이제 이쪽도 만만하지 않아요. 광화문 국면을 공장장이 순식간에 뉴공 조민양 인터뷰로 되치기해버렸습니다. 오늘 광화문 집회는 왜 실패했을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집행부가 참석자들에게 가능한 그림을 그려주지못한게 제일 큰 이유입니다. 정권을 뒤집을 수 있다는 그림, 문재인을 하야시킬 수 있다는 그림, 우리 황교안 또는 나경원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그림, 박근혜가 석방되는 그림 이런게 그려져야 하는데 정국에서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해 보이죠. 그러니까 그들의 집회는 맥 빠지고 허무맹랑한 구호만



피해가 생겼는데도 무시하고 광화문에 와서 정쟁 유발하는 집회를 하는 것이 이게 맞는 거냐, 그런 비판이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당이니까 당연히 국회에서 법과 예산을 심의하고 그거를 위한 국정감사를 열심히 하고 이러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제 자유한국당이 발목을 잡고 있지만 저는 자유한국당이 어제의 집회를 마지막으로 다시 양심을 찾아 주길 바랍니다. 이 언제까지 이렇게 저 이게 본래가 국회라는 것이 말씀하신 대로 사회적 갈등을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용광로 속에 녹여서 해결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러면



말했고, 박정희는 웃음을 보이면서 “종교 그 자체가 반공 그 자체가 아니겠느냐”며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바로 반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개신교의 반공주의가 박정희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는 “반공주의를 매개로 권력과 결탁한 개신교



기도를 하기도 했다. 1980년 8월 전두환을 위해 개신교계가 연 조찬기도회 모습 ⓒ기타 독재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평신도들을 동원해 대규모 기도회를 열며 정권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열풍이 불던 1987년. 전두환 정권에 맞서 많은 시민이 민주화를 외치며 투쟁하던 이 시기 정권이



조아리며 축북을 기원하는 치욕적인 장면까지 보여줬다. 정식 국가조찬기도회는 아니지만 당시 개신교 목사들은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고 전두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당시 조찬기도회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광주 학살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의 안정적인 통치기반의 마련을 개신교 목회자들이 도운 것이다. 당시



각하의 치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군신자화운동이 종교계에서는 이미 세계적 자랑이 되고 있는데 그것이 만일 전민족신자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될 수만 있다면 10월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살자’ 전두환을 축복한 목사들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 사회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





더한다 해도 1945년 당시 남한의 개신교 신자는 2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인구의 1~2%에 불과하던 개신교는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한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엔 50만 명으로 두 배 늘어났다. 그러다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하게 된 시점은 1960년대와 1970년대로 박정희 집권 시기와 일치한다. 기독교대연감과 한국종교연감 등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집권 첫해인 1961년 60만7천여 명이던 신자는 박정희가 사망한 1979년 598만여 명으로 884.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32위 -> 2018년 25위로 개선 24. 언론자유지수 2016년 70위 -> 2019년 41위로 개선(아시아 1위로) 25. 국정원 국내정보수집 금지, 기무사 해체, 공직자 갑질금지 26. 부마항쟁, 대구2.28, 대전3.8의건 정부기념일로 지정 27. 최저임금 2016년 6030원 -> 2019년 8350원 -살인적 장시간 노동시간 단축 28. 고용률 2016.9월 66.4% -> 2019.9월 68%로 개선 29. 청년실업률 2016.9월 9.4% -> 2019.9월 7.3%로 개선 30. 조선업 회복! 수주액 세계 1위!! - 문재인 정부 2년 반 만에 이런 일이! 1부